영화 해석

영화 '인타임' 리뷰 | 어설픈 자본주의 비판

노동 토끼자 2021. 2. 8. 14:21

단순한 액션영화로 접한다면 킬링타임용으로 재밌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기대하는 바가 달랐기에 즐기지 못했다.

 

 

독창적인 컨셉 (설정)

영화의 컨셉은 아주 독창적이다.

가깝고도 먼 미래. DNA 조작으로 인해 인간은 25살까지만 살 수 있고, 그 이후로는 시간을 벌어야 살 수 있다. 돈 대신 시간이 화폐인 셈이다. 예를들면, 커피를 살 때도 내 시간을 팔아서 사 마신다.

  • 시간을 벌지 못하고 끝나면 심장발작으로 그 자리에서 바로 사망한다.

 

태어날 때부터 시계가 몸에 있다. 야광으로 빛난다.

  • 사람들은 서로 손을 맞잡아 시간을 주고받을 수 있다.
  • 아니면 휴대용 카드리더기 같은 도구로 시간을 거래하기도 한다.
  • 가난한 사람들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는 반면, 부유층들은 시간이 넉넉하기 때문에 여유롭게 행동한다.

 

자본주의 사회를 아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설정.

이러한 설정은 자본주의를 아주 직관적으로 묘사한다. 나도 그랬지만, 금융에 대해 관심이 없어 무지한 사람들은, 자신이 일을 해서 돈을 번다는 노동소득에만 초점이 맞춰져있다. 사실 알고보면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시간을 파는 개념이 크다. 시급이 그렇다. 자본가는 자신의 시간을 노동자로부터 사는 셈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본가는 더 확보한 시간으로 다른 일을 할 수 있고, 더 많은 소득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이게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원리다.

 

롭 무어의 '머니' 책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머니 (양장) - 4점
롭 무어 지음, 이진원 옮김/다산북스

주인공이 사는 곳은 빈민가인데, 그곳 삶이 사실 우리 평범한 삶과 다를바가 없다.

이렇듯,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단번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좋은 설정이다.

 

주인공은 극의 초반에 시간이 아주 부유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의 시간을 기부 받는다. 로또에 당첨된 셈이다. 부유한 사람은 주인공에게 '시간'에 대한 비밀이라며 "시간(돈)이 모두에게 분배되면 사회 시스템이 무너지기 때문에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사실 비밀이라고 할 것도 없다. 자본주의의 원리다. 

 

이해가 안 가는가?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노동자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 그런 사람들은 보통 시간당 수익이 낮다. 시간당 수익이 낮은데 먹고 살 만큼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이 노동자에게 시간당 급여를 많이 주면 노동자는 열심히 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본가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지는 일이다. 즉, 모두가 부유해지면(넉넉히 돈을 벌면) 자본가를 위해 열심히 일해줄 노동자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적절히 최저시급 언저리에서 급여를 유지하는 것(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콘텐츠가 있으면 꼭 따라붙는 댓글이 있다. "그게 불만이면 북한으로 가라"고 한다.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진짜 부유한 사람이거나, 정말 멍청한 사람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유한 사람은 댓글 같은 건 남기지 않으니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돈 좀 번 사람들은 '열심히 하면 된다' 라고 말한다. 그런 생각 때문에 치열한 경쟁사회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란, 우리의 삶이란 경쟁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그렇지 않다. 누구나 돈이 많다면 그냥 쉬고 싶다. 그러니까, '열심히'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도 '열심히'를 강조하거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인간들을 보면 참 답답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본인을 포함한 우리의 삶은 더 팍팍해지는데도 말이다.

 

영화 '인타임'은 '시간'을 화폐로 거래한다는 직관적인 비유를 통해 자본주의의 단점을 재치있게 비판해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 

 

빈약한 철학으로 인해 정신나간 테러리스트가 되어버린 주인공.

캐릭터 빌드업이 빈약하다.

1. 철학이 없는 캐릭터의 난동극.

주인공은 극 초반에 시간이 부족해서 엄마가 죽는 비극을 맞는다. 그 이후로 '왜 우리는 가난해야만 하는가'라는 분노에 차 막무가내로 부유층의 마을로 향한다. 사유하는 과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왜 우리는 가난해야만 하는가"다. 

 

주인공은 그냥 지나가던 부유한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는다. "왜 뺏냐"고 물으면, 주인공은 "뺏는 게 아니고 누군가 우리에게서 훔쳐간 시간을 돌려받는 거다"는 식으로 말한다. 이거 주로 현실에서 테러리스트들이 하는 말 아닌가?

부유한 사람들을 무조건적인 절대악으로 몰아가는 설정은 치명적인 실수다.

 

철학이 없는 주인공의 모험은 모험이라기보다 난동극에 가까워 보인다.

 

 

2. 주인공의 설정을 대사 하나로 처리.

잠시 한 눈을 팔면 주인공의 설정을 놓친다. 때문에 뒤에 나오는 장면들이 절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장면 1) 돈(시간) 걱정을 하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엄마. 주인공은 엄마에게 "돈 벌테니 걱정 마"라고 한다. 엄마는 "또 힘을 쓰는 일을 하려고하니?"라며 우려한다.
장면 2) 동네의 펍, 소소하게 도박을 하고 있는 엑스트라가 주인공에게 말 건다. "우리랑 도박 안 할래?" 주인공은 거절한다. 그러면 엑스트라가 말한다. "다행이다. 너가 끼면 내가 돈을 못 따."

 

주인공 설정에 대한 설명은 이 대사 딱 두 마디로 끝나고 지나가버린다. 장면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놓치기 쉬운데다 공감도 가지 않는다.

 

주인공은 2막에 들어서며, 부유층의 파티장에서 도박을 해 거액의 돈을 따낸다.

그러다가 붙잡힌 주인공은 화려한 액션으로 위기를 탈출한다.

 

이쯤되면 주인공은 대체 뭐하는 인간인가? 싶다.

 

 

주인공의 철학도, 설정과 뒷배경도 공감할 시간이 없었기에 이후 주인공의 행동들은 계속 물음표만 남긴다.

진부한 카 체이싱 장면과 불필요한 러브씬을 걷어내 확보한 러닝타임으로 조금 더 철학을 담았으면 정말 좋은 액션 영화가 됐을 것 같다.